티스토리 뷰
목차
차별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시대
1960년대, 미국의 모든 것은 흑과 백으로 나뉘었다. 좌우로 나뉜 것이 아니라 위아래로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백은 언제나 위였다. 흑과 백이 함께하는 것은 금기였고,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버스는 흑인 지정석이 따로 있었으며, 만석일 경우 그 좌석마저도 백인에게 양보해야 하는 법이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경찰에 체포되기까지 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거기에 불응하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모두 그런 차별에 익숙했고 순응했으며 과격한 희생을 요구했지만 변화는 더디었다. 1860년대 발발한 미국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를 폐지한 미 북부 지역은 상황이 그나마 좀 나은 편이었는데, 흑인 노예제를 지지했던 남부지역의 상황은 훨씬 심각했다. 영화 <그린북>은 그러했던 시절, 취향도 성격도 정반대인 두 남자의 미국 남부 여행기를 다룬다. 영화의 제목인 '그린 북'은 흑인들을 대상으로 제작된 여행 안내서의 이름인데, 흑인들이 묵을 수 있는 숙소 리스트가 게재되어 있다. 백인들의 위선과 차별로 이어지는 고정관념에 대한 대안을, 영화는 휴머니즘에서 찾는다. 진부한 결론이지만, 사람과 사람이 주고받는 진심이 가진 힘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서로 극과 극인 두 사람이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데는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도 한몫한다. 특히 비고 모텐슨은 체중까지 늘리며 수다쟁이에 다혈질 중년 남자로 분하였는데. 이 영화로 비고 모텐슨을 알게 된 내 입장에서는 이후 그가 나오는 느와르 영화를 보고 매우 놀라웠다.
줄거리
1962년, 일하던 나이트클럽이 두 달간 문을 닫게 되자, 토니 (비고 모텐슨)는 생계를 위해 일거리를 찾던 중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의 보디가드 겸 운전기사 면접을 보게 된다. 돈 셜리 (마허샬라 알리) 박사의 운전기사로 채용된 토니는 돈 셜리 박사와 함께 인종차별이 극심한 미국 남부로 8주간 순회공연을 떠난다. 토니는 흑인 여행자들이 출입 가능한 숙박시설과 음식점 정보가 있는 '그린 북'을 참고하며 돈셜리 박사의 보좌에 최선을 다하지만 품위를 최우선시하는 돈 셜리 박사는 수다스럽고 걸걸한 토니가 마음에 들지 않고 불만만 쌓인다. 백악관에 초청되는 등, 천재 피아니스트로 인정받는 셜리 박사는 무대에서 내려오면 화장실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양복점에서도 쫓겨나는 등 갖은 수모를 당하는 모습을 보며 토니는 점차 셜리박사에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한편, 셜리박사는 토니의 위기 해결 능력과 소탈한 성격에 마음의 문을 열며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진다. 투어의 마지막 날, 공연이 열리는 백인 클럽에서 셜리 박사에게 허름한 창고를 대기실로 주자, 실랑이를 벌이던 두 사람은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허름한 흑인 클럽에 들어가 소울푸드를 먹어치우고, 흑인이기 때문에 연주하지 못한 쇼팽의 곡을 멋지게 연주한다.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 폭설로 발이 묶이자 토니는 졸음에 눈이 감기고, 크리스마스이브를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어 했던 토니를 위해 셜리 박사는 직접 운전대를 잡는다. 두 사람은 각자 집으로 헤어지지만 곧 셜리 박사가 토니의 가족과 친구들이 모인 집에 찾아오고 이를 반갑게 맞아주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인종차별을 위트 있고 품위 있게
<그린북>은 부당한 폭력의 재현이 중심에 있지도, 극적인 서사가 중심이 되는 영화도 아니다. 그저 1962년 미국 남부의 일상 속에 차별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고 말한다. 토니조차 자신을 고용한 셜리에 대한 직접적인 인종차별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영화의 도입부에서 자신의 집에 일하러 온 흑인 인부들이 먹던 컵을 더럽다고 생각하고 버린다. 흑인을 혐오했으나 어쩔 수 없이 그를 지켜야 하는 상황에 선 토니는 남부의 사람들에게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오직 피부색깔을 이유로 셜리를 모욕하고 폭력을 가하는 백인들에게서 부인할 수 없는 자신을 본 것이다. 타인에게서 자신의 결점을 발견하는,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았을 그 불편한 경험 속에 무려 8주 동안이나 놓여 있던 토니가 변화하는 건 필연에 가까운 일이다. 누구보다 가족과 친구를 중요하게 여기는 토니가 마침내 셜리를 자신의 친구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은 영화는 애정의 드라마인 동시에 이해의 드라마인 것이다. "나는 충분히 백인답지도 않고 나는 충분히 흑인 답지도 않고 나는 충분히 남자답지도 않고 나는 누구입니까?" 대중음악도 모르고, 프라이드치킨도 먹어보지 못한 셜리를 보고 토니가 자신이 오히려 흑인에 더 가깝다고 하는 장면이 있다. 흑인은 가난하고 거친 언어를 사용하고 건강하지 않은 식단을 섭취하며, 교육 수준이 낮은 등, 부정적인 이미지들을 연상시킨다. 이런 고정관념은 지금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일상 속에 스며들어 뿌리 박힌 차별과 불리함, 세상에는 차별과 편견이 아직도 만연해 있다. 영화는 셜리의 방식대로 말한다. 그런 불합리한 편견과 부당한 차별에 맞서는 것은 품위를 잃지 않는 것이라고. 예고된 해피엔딩으로 귀결되지만 그 끝에 따뜻한 감동을 선하는, 잘 만들어진 한 편의 버디무비이자 로드무비, 영화 <그린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