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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킹'은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현대사를 배경으로 대한민국을 앞서나가기를 열망하는 젊은 검사들이 20년의 영광의 시대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권력이 어떻게 이동하고 생성되는지, 과거 현대사에서 검찰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그린 작품입니다. 주인공의 학창 시절 소개와 검사가 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권력을 거침없이 누리는 검찰청 중간 부분까지 위트 있는 장면들이 꽤 많은데, 전직 대통령들과 함께 우리 현대사를 장식하는 역사적 사건들의 실제 뉴스 영상을 삽입해 한층 더 높은 현실감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줄거리
양아치 아버지 밑에서 싸우는 문제아 박태수(조인성 분)는 '실권'을 갖기 위해 공부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서울대에 입학한다. 민주화 시대에는 민주화 운동에 휘말려 강제 징집되기도 했지만, 전역 후 시험에 힘쓰며 검사가 됐고, 부잣집 딸 임상희(김아중 분)와 결혼까지 했다. 검찰이 발부된 후 '큰 일'을 하고 싶었던 태수는 선배 양동철(배성우 분)의 부탁으로 교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고생 사건을 처리하지 않고, 그 대신 권력을 쥐고 있는 서울지검 전략부장 한강식(정우성 분)의 선에 오른다. 그 후에는 자신이 구한 사건을 터뜨리고, 수사 과정을 적당한 시기에 언론에 흘리기만 하면 모든 것이 시나리오대로 흘러갑니다. 기획과 표적 수사로 잠재적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것은 괜찮으며, 위험에 처하면 연예인 스캔들로 물타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검찰 개혁 카드를 들고 나온 '참의원 출신 대통령'입니다. 권력에서 벗어나 검찰 본연의 임무에 집중하겠다는 대통령의 개혁 의지가 눈에는 제 밥그릇을 빼앗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대통령은 탄핵당하고, 헌법재판소 판결 이후 업무에 복귀한 뒤 레임덕과 사투를 벌입니다. 정권이 바뀌고 다시 기회가 한강식 일당에게 찾아옵니다. 퇴임하는 대통령의 수사를 이끌고 새 정부의 든든한 칼(충성견)이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지만, 정권에 맞게 얼굴을 바꿔가며 권력을 누린 이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위기가 닥칩니다. 이들은 강식의 '더러운 일'을 다루는 들개파 2 인자 최두일(류준열 분)의 도발로 드러날 위기에 처하고, 강식과 동철은 꼬리 자르기로 박태수를 잃고, 두일은 죽음을 맞이한다. 우정과 집안의 재력, 명예, 모든 것을 잃은 박태수는 복수를 위한 양심선언을 하게 된다. 장인의 연줄을 통해 야당에 협조한 태수는 검찰을 압박하고 국회의원에 출마해 결국 한강식을 향해 회한의 한 방을 날린다. 실형을 선고받은 한강식은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고, 서울 종로구에서 기존 5선 의원과 마주한 태수는 가족들과 함께 출구조사를 지켜본다. 발표 5초 전 태수는 '꼭두각시 같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다가 당선되었을 것 같냐는 질문으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월가의 늑대가 될 수 없었던 검사들
영화는 이미 노골적으로 드러난 현실을 극복할 수 없다. 영화 한 편만 봐도 새로운 것이 없다. 기존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미 만들어진 설정이 대부분이다. 검찰이 하는 나쁜 일은 특별할 게 없고, 영화의 핵심인 '이슈를 가리는' 방식도 예전에는 일반인이 몰랐던 부분이 아니다. 중반부 이후의 스토리 전개도 실망스럽다. 주인공 박태수의 추락 과정과 마지막 반등의 방식은 너무 단순하고 설득력이 높아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박태수의 반등에 반응하는 한강식의 추락 역시 매우 둔하다. 심지어 대척점에 서 있는 안희연 캐릭터도 부실해 더욱 허당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를 연기한 박소진의 연기는 혼자서도 훌륭하다. 잠시 등장하고도 꼿꼿하고 강하다는 느낌이 든다) 영화의 많은 부분이 단순히 인물들을 스케치하고 통과하는 것이고, 내레이션은 리듬감은 있지만 20년이 넘는 서사적 이야기를 압축해서 전달하기에는 부족한 영화 전체를 지배합니다.
뉴스 자료의 화면을 통해 현대사를 장식하는 역사적 사건을 알려주는 것도 좋지만, 태수의 인생이 최저점을 찍었을 때 뉴스에 등장하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장면을 그때 써야 했던 걸까요?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뉴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인물들인데 간접적인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화면만 이렇게 다른 것이 이상합니다.
공익을 구현하는 사적 복수
다만 '더 킹'은 영화 개봉 당시 그 어느 때보다 사회를 바꾸려는 의지가 강했던 상황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영화다. 최순실 게이트 이전의 촬영이 마무리됐다고 하니 이 영화는 시기상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영화 속 주인공들의 등장 속에서 오로지 권력만을 추구해 온 김기춘과 우병우를 떠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노 전 대통령의 당선과 탄핵,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담고 있다. 특히 제작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근혜가 노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상황을 비웃었다는 점에서 당시 문화예술계가 얼마나 경직되어 있었는지를 고려할 때 한재림 감독에게는 큰 결단이 필요했을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태수의 강식에 대한 복수로 채워진다. 이러한 복수는 태수의 정의감 때문이 아니다. 말 그대로 개인적인 복수다. 그를 성공으로 이끄는 듯했으나 성공의 정점 직전에 끌어내렸던 그의 롤모델에 대한 복수다. 이 복수극에서는 잘못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깊이 있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는 이전의 다른 심사 영화들처럼 정의가 저절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개 같은 외모'를 가진 모험가의 기질을 지닌 개인의 권력에 대한 욕망이나 복수만이 가능성을 열어놓는다.